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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삶
존엄한 죽음

존엄한 죽음,

아름다운 삶의 결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이 한 번의 생을 허락받았습니다. 돌이켜 다시 살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상 필름처럼 원하지 않는 어느 시간만을 지워 버릴 수도 없습니다. 살아온 그 만큼이 나의 것이며 또 살아갈 날들 역시 온전히 나의 것입니다.

사실 ‘던져진 존재’라는 철학자들의 표현처럼, 자신의 출생을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던져졌다는 표현이 다소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출생부터 어려운 환경이었던 사람조차도 그가 인간의 모습을 지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에게는 존엄함이 부여되었습니다. 각자의 신념에 따라 존엄에 대한 개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인식하는 데는 차이가 없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지요.
지구 어느 곳의 작은 나비 날갯짓이 어디선가는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미로 미국의 기상학자가 쓰기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초기 사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표현으로 더욱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 역시 결코 개인적인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가 바로 지구촌의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타인과 결코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던져진, 이 한 존재의 삶은 각자 자신을 위해서도, 타자인 이웃을 위해서도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고 삶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지고, 함께 있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보편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처럼 ‘자신이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행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들 하지요.

그런 ‘좋은 사람’들은 떠날 때도 아주 호젓이 떠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유로움입니다. 권력이나 재물, 사람이나 다른 그 무엇에 대한 것이든- 살아가는 데에 물론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애착은 우리를 떠나기 힘들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데, 자유로운 사람에게서는 그런 애착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그 길, 떠나올 때처럼 또 다시 던져지듯 떠나가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삶을 편안히 가는 이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스승입니다.

우리가 예부터 써온 말, ‘돌아가셨다’는 표현은 떠나온 어딘가가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던져졌다’는 말 역시 던진 주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삶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나올 때 태 안의 것 어느 하나도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다른 어느 세상의 태와도 같은 이곳에서 가져갈 것이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편안히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홀가분히 놓을 수 있는 연습은 살아 있을 때 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정말 그 일은 갑작스럽게 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사고 등으로 임종을 맞는 이들 외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투병 기간이 허락되는지도 모릅니다. 길고 힘겨운 투병 기간이지만 바로 그 시기에 우리는 손 펴는 훈련과 이별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가꿀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그 절명의 순간에 자유로워질 연습을 위해 우리에게 저마다의 일생이 주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떠나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품위 있는 인간의 존엄함을 보게 되며,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도 그 길을 그렇게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존엄한 죽음이란, 바로 아름다운 삶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정애(시인. 자문위원)